초박빙 승부였던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도 끝났다. 우리 사회는 정치 갈등으로 분열돼 있다. 2021년 초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28개국을 대상으로 국민 인식을 조사한 결과, 한국은 최고의 갈등 국가였다. 여러 갈등 중 빈부 갈등, 정치 갈등, 이념 갈등, 성 간 갈등, 세대 간 갈등, 지역 갈등은 조사국 중 제일 높게 인식됐다. 이 중 정치 갈등, 즉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다른 사람들 간의 갈등이 높다고 인식한 한국인은 91%나 되어 조사국 평균 69%보다 훨씬 높았다.
갈등을 낮추기 위해 필요한 것은 관용이다. 그러나 2018년의 입소스 조사에서는 사회적 배경, 문화, 사고방식 등이 다른 사람을 관용할 수 있다는 비율이 한국은 20%로 조사국 평균 46%보다 월등히 낮았다. 한국은 갈등 관리역량도 낮은 나라로 분류되는데, 평화로운 집단적 의사결정에 필요한 시민 참여와 사회적 신뢰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2020년 레가텀 번영지수에서 한국은 종합적 번영지수로는 167개국 중 28위였지만, 사회자본 영역은 139위였다. 시민적 사회 참여 66위, 대인 신뢰 96위, 제도 신뢰 121위, 사회적 연결망 154위로 나타났다. 또한 국회에 대한 신뢰는 다른 국가기관들에 대한 신뢰보다 늘 낮게 나와 제도권 정치 경륜이 국민의 신뢰도와 비례하지 않는다.
어떻게 사회적 신뢰를 높일 수 있을까? 레이철 보츠먼의 '신뢰 이동(Who Can You Trust)'에 의하면, 사회적 신뢰는 지역적 신뢰, 제도적 신뢰, 분산적 신뢰로 중심이 이동해왔다. 지역적 신뢰는 농경사회에서처럼 지역민들 간의 직접적 상호작용으로 형성되는 신뢰다. 제도적 신뢰는 산업사회에서 제도적 중개인이나 공공기관에 의해 작동하는 신뢰다. 그리고 분산적 신뢰는 정보기술(IT) 발전으로 거래 및 중개가 플랫폼으로 넘어가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유튜브 등으로 미디어 환경이 바뀌면서 등장한 분권화된 신뢰다.
위 세 가지 신뢰를 각각 높일 수 있는 실천 방법을 찾아보자. 지역적 신뢰의 기반은 이웃과의 교류다. 아파트 승강기 안에서 인사라도 먼저 해보자. 혹시 상대방이 경계하거나 답 인사를 하지 않더라도 상처받지 말자. 인사는 공동주택 구성원으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과제인데, 남이 과제를 하는지 신경 쓰지 말고 내 과제만이라도 해보자. 인사를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모두가 인사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이것이 교류의 출발이다.
제도적 신뢰는 그것이 어떻게 훼손됐는지 생각해보면 제고 방안이 나온다. 기존 제도의 상층부를 점하던 이들의 치부와 위선이 드러날 때, 공적 신뢰의 마지막 보루 같던 사법부마저 중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했을 때, 공공기관 종사자들이 내부 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취했을 때, 언론이 조회 수 경쟁을 벌이며 자극적 기사와 오보를 남발할 때, 이익단체들이 공익을 내세우며 기득권을 위한 집단행동을 벌일 때 등이다. 기관이 신뢰를 받으려면 기관의 조직문화가 달라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조직의 수장을 비롯한 구성원이 바뀌어야 한다. 탈권위화와 분권화로 특권과 지대를 노리는 사람들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전문성과 공공심을 가진 사람들이 들어와야 한다. 대의를 생각하는 시민의 투표권 행사와 투명성 확대를 통한 제도권의 자정 압력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분산적 신뢰가 부상하는 시대에는 무엇이 필요할까? 음해와 거짓 선동을 일삼는 유튜브 채널들은 자동 추천 알고리즘을 타고 사람들의 편견과 확증편향을 강화한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극단과 혐오의 정치가 심해진 원인 중 하나다. 보츠먼은 신뢰의 잠시 멈춤을 제안한다.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수용하고 전달하기 전에 이것이 신뢰할 만한 것인지 확인하고 나도 사회 분열에 일조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기 위한 멈춤이다. 자, 이 글은 누구와 공유하고 싶은가?
[김희삼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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